간디 이야기
인도의 지도자 간디가 어느날 기차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조금 늦어서 이미 출발한 기차에 겨우 올라 탔습니다. 그러다가 신발 한 짝이 벗겨 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차를 멈추겠습니까? 한 짝 잃어 버렸지요. 간디는 그 순간 다른 한 쪽 신발을 마저 벗어서 던져 버리더라고 합니다. "아니, 한 쪽 잃어 버린 것도 아까운데 왜 남은 한 쪽까지 다 던져 버리십니까?" 누가 물었더니 "나야 어차피 잃어 버렸지마는 내 신발을 줍는 사람은 한 짝 가지고야 신겠나, 두 짝 다 주워야 신을 것 아닌가"하고 간디는 대답하더라고 합니다. 내 것 잃어 버렸다고 안타까워 하기 전에 그것을 가지게 된 사람 쪽을 먼저 생각했더라, 이 말씀입니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남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이야기입니까?
의미와 형식의 문제
의미와 형식의 문제입니다. meaning and form의 문제, 형체와 그 속에 있는 내용, 그 관계의 문제입니다. 예컨대 여기 그롯이 있고 그 그릇에 담긴 내용물이 있다고 할 때 내용물은 같아도 그릇은 다를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릇에 따라서 그 내용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집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좋은 그릇에 담겼으면 혹은 내 마음에 드는 그릇에 담겼으면 입맛도 동하고 소화도 잘 됩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같은 음식인데도 이 것이 내가 좋지 않게 불결하게 생각하는 그롯에 담겼다 하면 내 입에 그 음식은 맛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용도 중요하되 형식도 중요한 것입니다. 형식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겉으로 드러난 형식이란 계속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meaning and form -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meaning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속은 변하지 않고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form이라고 하는 것은 가변입니다. 옷을 갈아 입듯이 형식은 바뀌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든가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사랑도 그 표현이 아이들 어렸을 때 하는 방식과 컸을 때 하는 방식이 다른 법입니다. 바꾸어야 됩니다. 나이에 따라서 신분에 따라서 조금씩 바꾸어 표현해야 합니다. 적절한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음은 있는데, 마음은 꼭 같은데, 형식을 바꾸어야 될 처지에 가서 못 바꾸면 내용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대학 다니는 딸을 어렸을 때처럼 끌어 안고 뽀뽀를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변화해야 될 때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적절한 변화를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 일으켜서 이른바 권태기라는 것이 생깁니다. 사랑의 권태기가 여기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대로인데 사랑의 표현법이 발전을 못한 것입니다. 계속 발전을 시키고 소위 transforming을 해야 되는데 못 바꾸었다 이 말씀입니다. 적절하게 바꾸지 못하면 이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이에 걸맞게, 신분에 맞게, 또 시간에 맞게, 이렇게 계속 form을 아주 능동적으로 선택적으로, 어려운 말로는 창조적으로 변혁시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계속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부 많이 해야 됩니다. 사랑도 사랑 공부 많이 해야 됩니다. 사랑의 내용도 중요하지마는 사랑의 표현법도 계발을 해야 됩니다. 더 높은 수준으로 계발해야 됩니다.
도아매트식 부부싸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복종과 사랑, 이 속에 신비로운 조화가 있는 것입니다. 복종하라, 사랑하라, 주께 하듯 하라, 주께서 당신 자신을 주심과 같이 하라 - 참사랑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희생하신 것같은 자기희생을 하라, 또 그에게 복종하라, 명령하십니다. 복종과 희생, 사랑에 진정한 가정의 의미가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철저한 희생적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데이빗 아우스버그라고 하는 박사님이 '사랑의 대결'이라고 하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Pairing Enough to Confront' 라고 하는 책입니다. 이 속에서 부부싸움의 세가지 유형을 말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부부싸움을 한참 하고 나서 결론이 어떻게 맺어지느냐를 봅니다. "I win, you lose" 내가 이기고, 너는 졌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 이기고 싶지요? 오늘 내가 이겼다, 네가 졌다, 사과 받고 ... 이렇게 되지요.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잠깐 휴전한 것 같으나 이내 또 연장전이 벌어집니다. 그때부터 '두고 보자'합니다. 연장전의 선포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 그와는 반대로 " You win, I gave up" 당신이 이겼소, 나는 포기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증오가 시작됩니다. 두고 보자, 이것입니다. 두 경우 다 실패한 경우입니다. 이겨도 소용없고 져도 소용없습니다. 자, 이기고 난 즉은 연장전이 시작되고 졌다 하고 선언하는 순간에 마음에 증오가 싹트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 소용없는 것이지요.
이제 이분은 doormat를 이야기합니다. 서양사람들은 실내에도 신발을 신고 들어가니까 도어 앞에 신발 흙을 터는 매트를 깔아 놓습니다. 신발 흙털개입니다. 'doormat식 부부싸움'이 가장 바로 된 것이라고 그는 결론 짓습니다. 나를 밟고 가라, 진흙까지 집안에 들여놓지는 말라, 그것입니다. 나를 밟고 가라, 나는 희생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소중한 것이다, 나는 doormat같이 밟혀도 좋다. 그러나 가정과 사랑의 고귀함은 지켜다오 -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입니다. 이 마음이라면 부부싸움 할 집 없습니다. 나는 신발 흙털개요, 밟고 지나가시오 - 어떻습니까? 더러운 것은 다 털어내고 깨끗하게 되어 들어 가 달라 - 이 사람이 싸울 사람입니까? 이런 길 밖에는 참으로 사랑의 길은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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