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서울에 다녀올 때 몇 번 잡아보긴 했지만 근 일년 큐대를 놓았다가 다시 강호에 돌아오니 당구가 잘 안된다. 우선 스트로크가 불안하다. 멀리 있는 볼의 두께를 맞춘다는 게 거의 요행에 가깝다. 빈쿠션치기도 원래 시스템 계산 없이 감으로 치던 버릇이었기 때문에 그 감이 떨어진 지금은 빠킹하기 일수다. 어떤 날은 예전처럼 잘 맞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 기량을 찾으려면 아직 한두달 더 지나야 할 듯 하다. 그동안 친구들의 당구 사랑은 더 커진 것 같다. 일주일에 두번, 화당과 금당을 정기적으로 하고 그 외에도 모이면 당구를 많이 치고 있나 보다. 당구장에 자주 모이게 되니 10분에 천원짜리 당구 값도 가랑비에 옷 젖을만하고 게다가 저녁식사비용도 부담될 듯 하다.
며칠전 금당에 갔다가 분당의 조국수와 함께 기량을 겨루게 되었다. 예전에 그와 파트너가 되어 총동문대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많이 늘었나 보다. 아직 다른 일행이 도착하기 전이라 둘이서 한 게임 치고 있었는데 생각처럼 잘 끝나지 않았다. 진도는 내가 먼저 나갔지만 나머지 두 개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국수는 나보다 조금 더 남았는데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남은 점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시간이 40분 가까이 갈 무렵에 돌연 그가 게임을 포기하고 40분에 해당하는 4천원을 묻겠다고 한다. 자기가 만회할 가능성은 없고 시간만 끌게 될 터이니 게임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옆에 다른 친구가 와서 같이 치겠다고 기다리고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의외라고 느꼈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를 결정할 수 있는가?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사실 우리 인생에서 그 포기의 시기를 놓쳐 당했던 쓰라림과 후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딴 경우는 몰라도 적어도 당구에서 만큼은 누구나 스스로 한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포기하게 되지 않는다. 아 이게 바둑판에서 사석을 만든다는 의미인가 싶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선택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역시 바둑의 고수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제 화당에 갔었는데 당구가 잘 되지 않았다. 첫 게임은 쓰리쿠션 8개 지수의 C군하고 치다가 내가 마지막 한개 남겨 놓고 끝내지 못하는 사이에 40분의 역전패를 당하였다. 두번째는 9개 지수의 K군하고 치는데 무려 65분을 끌었다. K군은 두 개를 남겨 놓은 상태로 근 20분 동안 진전이 없었다. 나 또한 첫판 패배의 후유증인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이날 내가 당구기록을 하고 있었는데 무려 55이닝을 쳤고 내 공타는 44개 GA(게임에버리지)는 0.20이었으며 K군은 공타 46개 GA가 0.16으로 서로 한개, 두개까지 남겨 놓았다가 승리는 K군이 차지했다. 그 다음은 지수 11개의 S군이 합류하여 저녁식사 전까지 세명이 쳤는데 50분과 30분 소요된 두 게임은 내가 이겼다. 저녁식사후에는 20분 게임에서 K군이 이겼고 다음 30분, 30분, 30분, 40분의 4게임은 모두 S군이 승리를 장식했다. 저녁식사 후에는 오케이 당구장으로 장소를 옮겼는데 홈 구장에서의 게임이어서 빨리 끝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날 K군과의 게임이 길게 지체 될 때 얼핏 떠오른 게 총동문당구대회에서 경기시간 제한을 두는 것처럼 우리도 경기시간 제한을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가령 2인조 게임에서는 40분으로 제한하고 40분에 들어설 때 이유 없이 큐를 놓고 각자 반분해서 2천원씩 묻는 것이다. 마지막 한개 남은 경우에 아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 못 끝낸 것에 대한 벌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게 게임의 극적 반전 상활을 연출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당구에서 핸디를 적용한다는 건 서로 승패의 경우 수를 비슷하게 가져가기 위함이 아닌가? 만일 누가 자기는 매일 이긴다고 자랑하고 있거나 내심 자부심을 갖는다면 그건 그의 핸디가 잘못되었다는 걸 얘기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게임은 누가 더 우세했는가 따지지 말고 각자 부담하는 게 옳다고 본다. 승패를 굳이 가르기 위해 서로 안 맞고 있는 경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는 건 보는 사람도 지루하고 치는 사람도 갑갑하다. 맥주 내기라도 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게임비 정도는 각자 부담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 게임을 하는 게 정신건강상 좋을 것이다. 가령 3인조 4인조 게임에서는 한시간 60분으로 지정할 수 있겠다. 다음번 우리 비보이즈 모임에서 이를 안건으로 채택해서 논의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2015.4.25 총동문당구대회에서 3구시니어복식 파트너 조동호 국수가 국수를 ㅋㅋ